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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내 직업' 천상병 시인을 기리며...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서울대학교 상대를 졸업하고 부산시청에 근무하며 시인이자 평론가로 활동하던 시절, 유럽으로 유학을 갔던 친구로부터 술 한 잔 얻어먹고 막걸리 값을 받는다.
이 일이 빌미가 되어 1967년 동백림 사건 때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끌려간다. 숱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성기능 불능자가 된다.   

6개월 뒤 선고유예로 풀려나지만 거지가 되어 거리를 떠돌다 청량리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그의 친구들은 이런 천상병 시인이 사망했다고 여기고 유고시집을 낸다.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문우들이 시집을 들고 그를 찾아갔을 때는 기저귀를 차야만 하는 몸이었다.

 

마흔둘에 친구의 동생인 목순옥 씨와 결혼을 하고 고문 후유증으로 아기도 낳을 수 없다.  순수하고 천지 난만하다라며 그를 사랑하는 여사님.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지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그나마 이 부분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 후 인사동에 "귀천"이라는 찻집을 내고  지금은 조카가 하고 있다는데 한국 가면 꼭 그곳을 다녀와야겠다.  좀 더 빨리 방문했다면 목순옥 여사를 뵐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말해 무엇하랴  그때의 더 텅 빈 영혼을 탓한들.

 

왜 천재들의 삶은 일반인 눈에는 비극으로 비출까?   그도 정말 행복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아무 연고도 없는 니체가 떠오르는 걸까?   마치 나의 과거를 들추듯 나의 오빠이고 아빠인 듯이

말이 채찍에 맞는 소리에 말을 안고 한 없이 울었다는 니체.   니체의 삶에서 느끼는 가슴 절임이 느껴져서일까? 물론 천상병 시인은 슬픔이나 괴로움을 글로 표현한 적인 없지만 그의 인생에 이입이 된다.

 

긍정은 부정들의 초월에서 시작된다 라는 표현이 맞을까?  (Extreamely Positive)

 어떤 사물과 상황을ㄱ 보고도  내 마음을 자유롭게 서술하지 못하는 내가 글쓰기에서는 가장 비극적이라고 곧 깨닫는다.

인생 속에서 깊은 사유가 절실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