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섬은 사랑스러운 빨강머리 앤의 도시지만 무스코가가 나는 더 멋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곳을 떠나면 평가가 달라질 것이리라.
사람들은 말한다. 왜 이런 구석진 섬으로 오게 됐냐고. 영주권 받기가 용이하다는 판단과 평소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믿지 않겠지만 이곳은 전에 있던 곳(Muskoka-bracebridge)보다는 큰 도시이고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곳이라고나 할까 내 말뜻은 더 선진한 곳으로 왔다는 의미다. 새삼 갑갑스럽고 벋어나고 싶었는데 그곳이 제2의 고향처럼 몹시 그립고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들이 그리워지는 나날들이다. 낯설고 일이 벅차서 그럴 것이다.

온타리오 무스코카 지역은 토론토에서 2시간넘게 북쪽에 위치한다. 특히 아름답고 광활한 숲과 서로 연결된 수천 개의 호수와 강으로 유명한 알곤킨이라는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주립공원 중 하나가 주변에 있다. 가을이면 단풍 놀이로 각 나라에서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집에서 나와 직장까지는 차로 3분 거리이다. 모든 마트도 10분 내외면 다 갈 수 있다. 걸어서는 5분이면 도착하는 직장이라 잠깐의 추위는 애교였고 하루종일 깊은 심해(바닷속을 연상시키는 실내)에서 일을 하므로 추운지 더운지를 느낄 수가 없었고 교통체증도 물론 없다. 참고로 나는 -30도 정도 되었을때 들숨을 쉬는 것을 좋아한다. 콧속에 살 얼음 어는 느낌을 좋아하는데 출퇴근길에 들숨으로 콧속을 얼게 만드는것을 즐기며 출퇴근하곤 했다. 아주 작은 16천명 인구밀도의 소도시의 친절한 그곳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다움을 잉태하고 그 잉태된 추억은 새로운 과거로 재해석해 준다. 이로서 과거는 내게 활력을 주는 강장제이며 무한의 미래를 선사해주리라 믿는다.

백인 시골 마을인 그곳 무스코카는 동양인이 거의 없고 일식당겸 한국식당을 해서 성공시킨 한국사장님이 참 대단하시고 감사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서 평판을 잘 쌓고 경영해서 10년 넘게 건재해 가고 있고 우리들에게 일터를 제공하고 영주권을 받게 해주는 곳이다. 많은 분들이 이곳을 거쳐서 영주권을 받고 캐나다에서 당당하고 합법적으로 살아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름다운 스팟이 많은 마을이다. 차로 5분만 가면 아름다운 호수( 바다같은 호수)들이 이곳 저곳에 있어서 맘 내키는데로 자연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당연 한국마트는 없더라도 아시안 마트라도 있기를 바랬으나 그건 희망 사항이었고 내가 차려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사업이 잘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 왜냐면 그 식당에서 일하는 8~10 가정 가량의 한국인이 전부이기에 말이다.(지금은 전과 달리 동남아 외노자가 늘었다고 한다) 김치를 담기위해서는 배추를 사러 최소 한 두시간을 차로 가야 배추를 살 수 있었고 아시안들의 야채들을 살 수 있었으며 한국음식이나 한국 마트는 2시간을 넘게 걸려 토론토에 가야 했다. 고맙게도 그 곳 사장님은 가끔씩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이 뭐가 있냐고 적어가셔서 대신 장을 봐다 주셨던 인정 많은 곳이었다.
나는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영주권을 못받고 새로운 이곳으로 오게 된것이다.
가족과 생이별을 해가면서 왜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를 수없이 대뇌었다. 왜 왜 나야, 하필 나만...
반면 이곳은 모든 인프라가 이섬안에 다 있어서 좋다. 장을 보고 옷이나 신발을 사고 각국의 음식들을 접할 수 있는 식당들이 있었고 한국 식당도 있었다. 걷든 차를 타든 5분에서 30분 안이면 어디든 가서 토론토같은 대 도시는 아니지만 상징적인 상점들은 모두 섬안에 있다. 버스비도 저렴하다. 학생 $10 일반$20이면 한달 패스로 이 섬안의 모든곳을 다 다닐 수 있는 넉넉함도 보이는 곳이다. 한국에서는 최대 대도시에 살다가 무스코가지역에 왔을때 너무나 답답했던 느낌이 들었는데 이 섬은 보니 새삼 내가 도시녀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도 엄연한 도시다. 감자가 많이 나는 다국적 도시(감자를 엄청 많이 생산하고 맛도 최고이며 다양한 인종들이 모이는곳이다)
바다로 둘러 쌓여있지만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나만의 바다를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찾아 헤매본다.
이 척박한 섬마을에 낭만적인 빨강머리 앤이 탄생 됐는지 이해가 되어가는 중이다.

큰일 두어가지 빼고는 무난하게 살았다고 생각하고 감사했었는데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형벌이 었다는 생각이 물씬드는것은 기우일까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서글픈 생각마저 들었지만 울 애들을 생각하고 참고 감사했다. 이런 궁금중을 가져도 누구도 답을 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궁금증이 풀리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 이길은 나만을 위한 길, 나의 결이다.
나는 지금 형벌을 받는 것인가 축복의 환희 속인가 , 무엇이 축복이고 무엇이 고난인가
고난은 진정 축복인가
이 아름다운 자연은 힘들어 하는 나를 성장시키는 스승이다. 나는 드뎌 참 스승을 만난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왜 기쁘지 않을까
6월인데도 지속적인 비바람이 몹시불던 어느날, 나를 다독이고 긍정으로 무장하면서 이섬을 좋아하기로 마음먹은 그때쯤,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이라 누군가 말했던가. 나는 뜻밖의 돌발상황에 잠시 숨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