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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노니 아다지오 G단조의 영화같은 실화2탄

1탄에 이어....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는  레모 지아조토의 작품이다.라고 학계에서는 인정했다고 했었죠.  그런데 이런 사례가 다른 클래식 작품 중에도 여러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철학자들도 작가들도 예명으로 책을 출판하듯 말이죠.

 

2020. 6  울 동네

 

대표적인 예가 카치니의 아베마리아입니다.  카치니는 1550년 경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618년까지 활동한 작곡가입니다.  카치니의 작품 중에서 아베마리아는 노래가 특히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카치니가 작곡한 곡이 아닙니다.

구 소련에서 활동한 블라디미르 바빌로프 라(Vladimir Vavilov, 1925-1973)는 작곡가가 있었는데, 그도 자신의 작품에 다른 클래식 작곡가의 이름을 빌려서 발표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해요.  무슨 심리일까요?  그는 이곡을 작곡했으나

바로크 작곡가 카치니의 이름에 붙였고 덕분에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라고 세상에 탄생하게 된 것이죠.  사실 여기에도 이유가 있겠죠 ㅋ  그건 담 기회에.

 

어쨌든, 보스니아 내전이 잔인한 살육으로 치닫던 1992년 5월, 유고슬라비아의 수도 사라예보는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채 몇 달째 세르비아계 민병대들의 위협 하애에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도시를 둘러싼 언덕에 자리 잡고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사살하던 세르비아계 저격수들 때문에 시민들은 언덕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 제대로 식량을 찾아다녔고, 5월 27일,  한 빵가게에서 빵을 만들어 판다는 소식이 들렸고, 사람들은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빵집 앞에 포탄이 떨어졌고, 22명의 사상자와 100여 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ㅠㅠ

 

참사 다음날.

사라예보 거리에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전날 죽은 22명의 무고한 시민을 애도하는 첼로의 선율이 마을의 슬픔을 감싸 안았죠.  검은 옷을 입은 연주자는 사라예보 필하모닉의 첼로 주자 베드란 스마일로비치(Vedran Smailovic)였습니다.  죽은 이들과 살아있으면서도 괴로워하는 가족들의 영혼을 달래듯 느리고 장엄한 애절하고 평온한.  피로 물든 거리를 알비노니 <아디지오> G단조로 전쟁의 참화 속을 서서히 물들여 갑니다.   음악은 이렇든 전쟁을 멈추게 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죠.  우리의 여러 상황을 어루만지듯이 말이죠.  세르비아 민병대도, 보스니아 저격수도.  멈. 추. 다.

 

사라예보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 로비치는 전쟁과 함께 음악 활동을 못하게 되면서 사라예보의 다른 시민들처럼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요.  22명의 사망 참사를 접하고 그 전쟁의 비극에 희망과 평화를 주기 위하여 자신의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22일간의 연주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귀한 그의 정신. 인류애.

언제 포탄이 날아들지 모르는 상황,  저격수들의 총구 앞에서 그는 매일 같이 22일간 연주를 하게 됩니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전쟁 폐허속의 스마일로비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도 피폐한 맘을 달래기 위해 근처 건물 아래에 몸을 숨긴 채 그의 연주를 들으며 슬픔을 달랬고, 평화를 꿈꾸고, 희망을 다시 품게 되었겠죠.   마치 타이타닉호에서 배가 가라앉고 있는 상황에서도 연주하던 그들처럼.

이일을 시작으로 스마일 로비치는 1993년 사라예보를 떠나 북아일랜드로 옮겨 갈 때까지 사라예보의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음악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답니다.  그리고 그의 행동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인류애를 보여주는 스마일로비치.

지금 코로나 상황에서도 많은 예술인들은 곳곳에서 우리의 영혼을 달래주고 있는 뉴스를 접합니다.

덕분에 조성진의 연주를 저도 YouTube로 보았다는... 너무 감사합니다.

 

헌데, 그들의 영혼은 누가 어떻게 달래 줄 수 있을까요?  나는 또한 지금  어떤,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가족들의 영혼이라도 달래 주어야겠네요. 저도 힘든 요즘이라 이곡을 계속해서 들으며 생각에 잠기 곤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치 않아야 겠다는것도 새삼 다짐 해봅니다.

어색함은 나를 크게하는 초대며 선물이라고 합니다.  말도 안되는 지구의 멈춤에도 나는 앞으로 전진 합니다. 

반 걸음이라도.

여러분 같이 걸으며  들어요.      곡을 올릴 수 없으니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