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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의 영혼을 유혹한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Socrates, 기원전 470년경-기원전 399년 5월 7일)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테네에서 태어나 일생을 철학의 문제에 관한 토론으로 일관한 서양 철학에서 첫 번째 인물로 평가됩니다.  또한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소크라테스란 말이 있습니다.  

신성 모독죄청년들의 영혼을 유혹한 로 기소당하고 71세의 나이에 사약을 마셔 사형을 당했어요. ㅜ (죽을 때 당시에도 토론을 했다고 함)

 

그는 대화를 매우 좋아했는데 그에게 토론을 못하게하면 법을 안 지킨다고 까지 하였으니 ㅋㅋ.   그가 아테네에서 현명하다는 사람을 찾아갔는데 다들 본인들이 현명하다고 하면서 막상 답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에 소크라테는 상대방이 현명하지 않다는 것을 토론으로 진위를 밝혔다고 하네요.  좀 밉상일 수도 있었을 듯 ㅋㅋ. 그래서 죄목이  -영혼을 유혹한 죄 인가...-

 

아테네에서 젊은이들은 이런 대화들를 흥미로워했는데, 상대방의 무식이 폭로되는 과정이 재밌었기 때문이라네요. ㅋ  

 

또한, 그는 "덕은 인간의 영혼의 본능이자 죽음도 방해 못하는 것이다" 라면서 영혼을 개발하는 철학을 돈으로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돈을 위해 가르치는 소피스트들을 경멸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가 흔히 그의 아내를 못생긴 악처라는 것도 사실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이 되네요. 아내 입장에서는 누가 좋아할까요. 집에서 놀면서 젊은이들과 하루 종일 돈도 안 벌면서 토론한다고 놀고 있으니,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내가 집안 살림을 모두 꾸려 나갔겠지요... 현대 같으면...  상상은 자유에 맡길게요. 그러니 악처가 아니고 현처였을 가능성도 있어요. 사약 먹을 당시에도 그의 아내가 제자들에 의해 밖으로 내보내지는 장면이 그림 뒤쪽에 보이죠?  어쨌든.

만약 여러분의 남편이라면? ㅋㅋㅋ

 

그리고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네요. " 젊은이여, 결혼하라. 좋은 처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악처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라고요

 

 

2020. 6. 15 강렬한 하루

그는 공자, 예수, 석가와 함께 세계 4대 성인으로 불립니다.  플라톤의  스승이었던 그는 플라톤이 20대인 시절, 스승이 민주주의에 의해 끝내 사형당하고 그것을 보았고 크게 분개한 플라톤은 그의 귀족주의(철인정치) 지지의 큰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과 달리 민주주의를 지지했죠.

 

그의 글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서 역사상 그의 철학적 관점은 많은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참지식은 글이나 문자가 아닌 생생한 대화를 통해서만 전달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의 제자들이나 당대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서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자인 플라톤의 기록입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석공 소를 운영한 석공이자 조각가였고, 산파였던 어머니인  평범한 서민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성장 초기에는 직업을 세습하던 당시 문화에 따라 아버지 밑에서 석공 기술을 배우며 철학, 기하학, 천문학 등을 공부했대요.  어~우  나열만 해도 어려워ㅠ.  

 

그는 자연 철학을 배웠으며, 그 기계론적 세계관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그때는 아테네의 몰락기였으므로 보수적이고 귀족적인 정신과 진보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비판적 정신의 혼돈 속 시기였습니다.  요즘으로 본다면 보수와 진보의 거센 논쟁?! 그의 보편적 진보주의 성향은 당시 소피스트들처럼 궤변의 진리를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태도를 배격하고,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를 찾아서 이상주의적, 목적론적인 철학을 수립하려고 했습니다.

 

그 밖에도 몇몇 중요한 기록들이 있는데 철학이나 극적인 표현이 많아서 실제 그를 알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삶과 업적을 일치시키기가 어려웠으나,  플라톤이 가장 믿을만하다고 하는데 많이 미화시켰다고 보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다른 저작들이나 유물을 통해서 소크라테스를 단지 날조한 인물이 아님이 드러나는 부분도 있답니다.  크세노폰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 그리고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 플라톤의 저작에 나오는 일반적인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확인하는데 유용했다고 합니다.

 

독배를 드는 소크라테스- 침대끝엔 제자인 플라톤.

청년에서 40세까지 세 번에 걸쳐 전투에도 직접 참여하고 40세 이후에는 청년들의 교화에 힘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회의 원로 일원으로 1년간 정치에 참여도 하지요.

 

그는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의, 절제, 용기, 경건 등을 가르쳐 많은 청년들에게 큰 감화를 줬고, 공포정치 시대의 참주였던 크리티아스 등의 출현으로 오해 속에서  고소되었으며, 배심원들의 투표 결과 사형이 언도되었고, 그는 도주할 수도 있었으나 죽음을 앞두고 법정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 제게 말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여! 당신은 당신을 적절하지 않은 최후의 죽음으로 이끈 이런 삶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까?라고.  하지만 저는 그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 잘못 보았습니다. 누구나 인생에서 선한 일을 추구하는 사람은 죽고 사는 일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지 혹은 그른지만을 고민할 따름이라고.... 그도 죽음의 시간에 언젠가는 머무를 것입니다.  그때 그는 죽음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삶이 부끄럽지 않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태연히 독배를 마시면서 빚졌던 닭 한 마리를 대신 갚아 달라고 친구에게 당부했다고 합니다. (의학의 신인 아스클에 피오스의 신전에서 치료받은 사람은 닭을 대가로 바쳐야 했다고 함)

 

그의 외모를 살펴보면 못생겼다고 전해지며 외모지상주의 풍조가 있던 당시 아테네에서 꽤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시민들 사이에서 알려진 것도 미남 제자가 아고라 광장에서 소크라테스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면서 라고 하니 얼마나 심각했는지 대략 짐작이 가네요.  예나 지금이나 ㅠ.  

 

그러나 외모를 불문하고 그의 풍채는 상당히 비범했으며 신발을 신지 않았고, 누더기가 되기 직전의 옷을 걸쳤으며, 사람들에게 신발에 길들여져서 불편한 거 아니냐고 했다나요.  이런 초연한 풍모를 과시하고 다닐 뿐만 아니라, 석공 출신이라 상당히 튼튼한 몸을 타고났다고 합니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잔치 자리에서 술을 가장 잘 마시고 멀쩡한 정신으로 늦게까지 토론을 했으며 뛰어난 알코올 분해력의 소유자로 여겨집니다. 

 

또한 전쟁 시에도 강한 멘탈로 배고픔, 목마름, 추위, 더움, 잠자기, 적군 등에 조금도 동요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했다고 하니 더욱 멋지게 느껴지네요.

 

그리고 사색도 즐겨하였으니, 

광장이나 길가, 시장 바닥 등 신분, 지위, 재산, 연령과 상관없이 대화와 토론을 했다고 합니다.  이때, 사람들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으면서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게 만드는 교수법이 유명한데 이를 문답법 또는 산파술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산파란 산모가 출산 시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어머니의 직업)  자신은 스스로 지혜를 낳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도와서 지혜를 깨우치게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참된 진리를 스스로 알 수 있고 보았던 것입니다.

 

[플라톤의 저서인 국가를 참조]  소크라테스 트라시마코스의 대화의 예를 보면,

 

: 자네 기분이 어떠한가?

: 우울합니다.

소: 우울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트: 침울하다는 것입니다.

: 침울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 기분이 더럽다는 것입니다.

: 기분이 더럽다? 그것은 또 무엇인가?

: 모르겠습니다.

: 그래. 자넨 그래도 낫네.  자네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런 대화 형식으로 무지를 스스로 깨닫게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여러 문제들로 머리가 복잡해짐 해답이 떠오를 때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만히 서서 몇 시간이고 길게 생각하며 해답을 찾고 자리를 떠나지 않아서 아테네 사람들이 구경하였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아테네의 변명>과 <소크라테스의 재판>이라는 책에서, 소크라테스의 삶과 당시 세계관이 잘 드러난다고 합니다.

기인의 풍모가 느껴지지요.

 

그는 아테네 안에서만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평생 동안 위에서 서술된 것처럼 세 번 참전했던 것과, 딱 한번 이스트 모스에서 포세이돈을 위해 열리는 대축제였던 이스트미아 제전을 구경하러 간 것을 합쳐, 단 네 번밖에 아테네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고 하네요. 현대에 태어났다면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플라톤의 <크리톤>에서 아테네의 법이 소크라테스에게 묻는 형식으로 자문자답한 <소크라테스의 독백>에 의하면,

'우리(아테네의 법)와 우리의 도시(아테네)'만으로도 충분했다고 말했답니다.

 

평소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다만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무지의 지"를 나타낸 것으로 겸손과 겸양의 표현이네요. 그래서 그는 진리와 지혜를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도록 설득하고 계도하였습니다.

민주 투사가 아닌 민주주의에 대항한 투사인 그는 아테네를 몰락시킨 주범으로 민주주의를 꼽았고 민주주의에 의해 죽었으니....



그리스 델포이 신전 기둥에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위대한 성인의 가르침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   -   "Know yourself"

나는 이곳으로 이주한 후로는 전혀 다른 직업과 주위 환경 속에서 계속적으로 새로운 나를 재발견하고 있습니다.  책의 주재들 중에 많은 주인공들이  집을 떠나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숙한 자아를 찾아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많은 각오를 다지는 계기를 줍니다.  그렇듯 나에게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 교육목적으로 이곳에 왔으나 나에게도 큰 의미가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시간입니다.

 

한국에서는 혼자 아이 둘을 키우려다 보니 정말 정신없이 살려고 발버둥 쳤고 모든 시간을 꽉 채우는 삶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곳의 여러 어색한 삶 속에 내가 조금씩 물들어 가고있을때 문득 내가 다람쥐( 챗바퀴 속 나)였다는 것도 깨닫게 됐죠.  새로운 나의 모습에 놀라며 부끄럽고 때로는 이해를 못할 정도로 이상한(?!) 나를 발견하며 깊은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지금 이 시간(코로나로 인해 시간이 조금 더 생김)들은 나를 관조하게 되고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입니다.  

인생은 새로운 발견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새로운 발견이란 물리적인 요소 뿐아니라 바로 나를 일컬을 수 있으며 그런 여러 가지 감정들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복합적인 감정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죠. 

 

여러분은 어떠세요?  내가 생각하는 나와 상대가 생각하는 나, 그리고 내가 지금 느끼는 나의 괴리감의 간극은 얼마나 되나요?  내가 인지하고 있던  내가 아닐 때의 혼돈. 지금.  나. 여긴 어디...

 

새삼 일체유심조!! (한자어-원효대사의 해골물)가 생각나네요.  나의 사상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

 

멍게과에 속하는 우렁쉥이가 있는데 이 우렁쉥이는 유생 시절은 마치 올챙이같이 생긴 외형에 뇌, 근육, 신경 등의 고등한 기관을 가지고 있는데 성체가 되면서 이런 기관들을 퇴화시키고 심지어는 자신의 뇌까지 먹어치운다고 합니다. 그러곤 바위에 붙어서 여과 섭식만 하기에  급기야는 식물적인 식생을 유지합니다.  결과적으론 뇌가 없어진 건가? 아님 필요가 없어진 건가? 그렇다면 뇌가 하는 일은? 뇌가 손상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에고ㅠ  이러다간 끝이 없겠다 ㅋ 어째든 저는 굉장히 왜곡된 나를 발견했어요. ㅜ

 

"인간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동물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90% 이상이 무의식적이고 비논리적이라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2가지 모두를 주장했죠)  그렇게 때문에 우린 과학적으로도 뇌를 써야 하며 철학적으로도 사고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어쨌든 저도 소크라테스의 깨달음을 다시 되새기며 고군분투합니다.  귀찮고 힘들어서 다시 회귀하려는 나를 토닥이며. 혼자 웃고 울면서 고독을 즐깁니다.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켜보고 싶습니다.  외로움은 우울하지만 고독은 깊이가 있는 성찰을 지향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원전 생존했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우리는 왜 그를 자꾸 현재로 부르게 될까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뿐이라는 그의 말에 제가 1%라도 다가가고 있는지.

저의 부끄러움을 감추기엔 유난히 밝은 달빛이 저를 선명하게 비추네요. 

 

또한 그는 말합니다. 죽음을 걱정하지 말고 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라고 말이죠.  역시 소크라테스입니다.  오늘은 자아(매타인지)를 논하다가 인간의 정해진 의 도착점인  죽음으로 귀결됐네요

오늘은 편안한 밤이 안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행복해요